4. 착각

SI산업은 기본적으로 착각에 돌아가는 산업이다. 갑회사/수행사/개발자 모두 착각을 하고 있으며, 그 착각이 SI산업이 유지되게 해준다.

4-1. 갑회사의 착각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자신들보다 수행사가 더 잘 만들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멀쩡히 생각해도 자신들의 시스템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자신들임에도 불구하고 수행사를 무안단물처럼 맹신하는 괴상한 행동성향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와 설계 그리고 구상을 해놓지도 않고 수행사를 맞이하는데, 당연히 수행사는 기존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갑회사가 원하는 것에 대한 파악과 설계를 프로젝트가 벌어진 상황이 흔히 벌어진다.

그러면 이러한 파악이 잘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갑회사는 보안을 이유로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병크를 흔히 저지른다. 애초에 그렇게 보안이 중요하면 자신들이 개발을 하면 되는 문제지만, 단체로 뇌추출 수술이라도 받았는 듯이 그러면서도 외부개발자에게 개발을 맡긴다.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 개발 도중 자신들이 개입하면 뭔가 잘 될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애초에 이 개입의 시점이 기획/설계 단계라면 기획/설계가 좀 오래 걸리더라도 애초에 방향을 제대로 잡고 진행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은 당연한 듯이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 개발에 개입한다. 당연히 이미 기획/설계 된 방향대로 개발되던 프로그램은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하고, 이런 일이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발생하다보니 개발은 방향을 잃고 엉망이 된다.

4-2. 개발자의 착각

그나마 개발자들의 착각은 그 파장이 적은 편이다. 이들의 가장 큰 착각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면 회사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SI산업의 가격은 기본적으로 맨먼스를 기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등급에 맞춰서 벌어올 수 있는 돈이 제한된다. 그러면 더 많은 일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파견을 전제로 하는 산업이다보니 한달에 처리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한개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종료시점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는데다가, 더 빨리해봤자 종료시점이 앞당겨지기는 커녕 뒤로 미뤄지지 않으면 다행인 산업이니 개발 속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SI산업에서 훌륭한 개발자라는 얘기를 듣는 경우는 개발을 빨리하거나 갑회사의 조건을 잘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훌륭하게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히 회사에서 차후부터 원하는 커트라인이 올라가게 되고 점점 더 많은 일을 짊어지게 되는 성과적 부채를 발생시킨다. 물론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면서도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면 좋은 상황이지만 무리해서 처리했다면 점점 부하가 걸리게 된다. 거기다가 주변 동료에 대한 부하도 함께 걸리기도 한다.

4-3. 수행사의 착각

수행사의 가장 큰 착각은 자신들이 IT회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인력변동이 잦은 데다가 전체적으로 모여서 의견을 공유할 수 없는 수행사의 특징상 회사를 전반적으로 꿰뚫는 개발사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개발사상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애초에 갑회사의 입맛대로 제작되는 프로그램들에는 수행사의 개발사상이 반영될 수 없다.

자신들의 개발사상을 제공하지 않는 수행사에서 결국 제공하는 것은 인력밖에 없는데, 결국 이는 인력파견업체이지 IT개발사로 보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이러한 인력파견업체는 갑회사에서 돈을 받아 개발자에게 돈을 주는 중간 연결자의 역할만을 수행하다보니 소속감을 느끼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그러면서도 개발자에게 소속감을 요구하며, 더 훌륭한 IT회사를 만들자는 수행사가 많은데 소속감은 둘째치고 발전시킬 개발사상도 존재하지 않는 회사가 어떻게 더 훌륭한 IT회사가 될지는 큰 의문이다.

이렇게 소속감을 느끼기 힘든데다가 부하가 많이 걸리는 업무 특성상 개발자는 빠져나가기 마련인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개발자가 빠진 공백을 더 싼 개발자를 고용하여 메꾸거나 비워두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기존에 남아있단 개발자들에게 큰 부하가 걸린다. 이는 결국 남아있는 개발자들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거기다가 더 싸게 고용한 개발자 또한 빠져나가게 된다. 애초에 인력파견업체의 본질인 소개료 느낌으로 수익을 가늠하였다면 이런 부하를 일으키지 않았겠지만, IT업체라는 착각으로 프로젝트 금액 전체를 회사의 수익으로 생각하니 결국 회사 전체의 프로젝트의 수행능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애초에 회사의 기본적인 사업 자산이 개발자밖에 없으면서 그 자산을 소홀히 대한 댓가라고 볼 수 있다.